브라질의 정신, “Ordem e Progresso(질서와 진보) [1]”를 생각하며



안녕하세요! 114호에서 미리 인사를 드린 OWL기자단 설희와 희설입니다. 이번 115호 굿소스를 통해서 정식으로 데뷔(?)를 하게 되었네요. 첫 기사를 한창 작성하던 8월은 35도를 웃도는 무더위와 브라질 리우 올림픽의 달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리우 올림픽은 근대 올림픽 120년 역사상 처음으로 남미 국가에서 개최한다는 점, 또 최초로 난민대표팀이 출전한다는 점 등으로 이슈가 되었었죠. 기자단은 올림픽 개막 시즌에 맞춰 (타이밍도 적절하게!) 개봉한 두 편의 브라질 장편 애니메이션 영화들을 보고 이야기를 나누어 보기로 했습니다.  


흔히 전 세계인의 축제라고 불리는 올림픽 기간에 상영된 두 영화는 ‘축제를 즐기되, 잊지 말아야 할 것들이 있다’고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 두 작품은 알레 아브레우 감독의 <보이 앤 더 월드(Boy and The World)>와 루이즈 볼로네지 감독의 <리우 2096 : Uma Historia De Amor e Furia>입니다. 두 영화는 역경을 딛고 꿈과 희망을 전하는 여타 애니메이션들과는 분위기가 달라요. <리우2096>은 부족을 지켜야 하는 운명을 타고나 죽지 않고 끊임없이 환생하는 남자가 브라질의 600년 역사 속에서 마주하는 주요한 사건들에 관련해 투쟁하는 이야기에요. <보이 앤 더 월드>는 산업화와 도시화로 모든 것이 풍요롭고 편리해진 오늘날의 이면, 불평등과 인간소외 등 무거운 주제를 천진난만한 아이의 시각으로 풀어낸 작품이에요. 두 영화를 통해 브라질의 어떤 모습을 알 수 있을까요?  감독들은 무엇을 이야기하고자 했고 우리는 어떤 시사점을 얻을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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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영화의 포스터  ⓒ 네이버 영화



1. <리우 2096>과 <보이 앤 더 월드>는 어떤 내용의 작품인가요?


설희: <리우 2096>은 주인공들이 브라질 600년 역사를 헤쳐나가는 내용이에요. 영화는 1500년대 브라질 원주민 투피남바족이 사는 시절에서 시작합니다. 신에게 부족을 구할 임무를 부여 받은 남자주인공은 불멸의 존재로 살아갈 운명을 타고나게 됩니다. 그러나 그의 부족은 포르투갈과 프랑스의 이권 다툼으로 몰락하고, 그 와중에 그는 사랑하는 여인마저 잃게 되죠. 절망한 그는 절벽 아래로 몸을 던지는데, 그 순간 새로 변하며 영원불멸의 삶을 살게 돼요. 반면, 그가 사랑했던 여자주인공은 600년의 세월 동안 계속 다른 모습으로 환생합니다. 그들은 시대를 걸쳐 반복되는 폭력과 부조리에 맞서 투쟁합니다. 그들은 1500년대에는 포르투갈, 프랑스 등 서구 열강에 맞서 부족을 지켜내려는 원주민 전사로, 1800년대에는 노예제 폐지를 외치는 소시민으로, 1980년대 군부 독재에 맞서는 대학생이자 사상가로, 2096년에는 자원 독점과 빈부 격차에 맞서는 역할을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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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0년대 남녀주인공의 모습(위) /2096년 환생한 남녀주인공의 모습(아래)  ⓒ 네이버 영화 



희설: <보이 앤 더 월드>의 줄거리는 간단해요. 많으면 7살쯤 됐을 법한 주인공 쿠카는 부모님과 함께 시골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었어요. 온종일 풀밭을 뛰어다니다 나무를 타고 올라가 구름 속에서 수영하고 저녁에는 언덕 위에 걸터앉아 아빠가 불어주는 피리연주를 듣죠. 쿠카는 가족과 함께 있는 시간이 너무나 행복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아빠는 도시로 일자리를 구하러 떠나요. 아빠가 보고 싶어 괴로워하던 쿠카는 결국 도시로 가기로 결심해요. 영화는 쿠카가 도시라는 더 크고 험난한 세계를 만나며 겪는 이야기를 담고 있어요. 아브레우 감독은 쿠카의 불우한 유년기와 아버지의 부재가 라틴아메리카의 역사를 은유한다고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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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골 마을의 언덕에 앉아 있는 아빠와 쿠카 ⓒ 네이버 영화 


2. 두 영화의 공통점을 찾아본다면 어떤 점이 있을까요?


두 영화 모두 자본주의가 극단으로 치달아 빈부 격차가 심화된 브라질의 시대상을 보여줍니다. 브라질의 빈민촌을 통해 도시 빈민들의 모습을 접할 수 있어요. <리우 2096> 속 리우데자네이루의 고층건물들은 현재보다 더 높고 건물들이 뿜어내는 빛 또한 더 화려합니다. 반면 빈민 지역은 그 빛들이 만든 그늘에 가려 더 어두워진 모습이었어요. 그 대비가 선명하죠, <보이 앤 더 월드>에서도 역시 청년이 사는 도시의 화려한 상점가에는 멋진 슈트와 원피스가 걸려 있지만, 정작 그 옷을 만드는 공장에서 일하는 청년은 그것을 가질 수 없다는 점에서 소외감이 느껴져요. 주목할 만한 건 두 작품 모두 역사상 중요한 사건들을 이야기하는데 정작 그 속에서 주인공들이 이뤄내는 건 없다는 점이에요. <리우 2096> 주인공들은 투쟁하지만 승리하지 못하고, <보이 앤 더 월드>의 주인공들도 착취당하는 상황을 견디며 살아가지만 결국 가진 것 없는 상태로 남아요.


또 다른 공통점은 두 영화 모두 환경에 대한 얘기를 다루고 있다는 점이에요. <리우 2096>은 미래에 물 부족과 수자원 독점 문제를 보여줌으로써 환경에 대한 경각심을 주고 있어요. <보이 앤 더 월드>는 영화 중간에 산림이 파괴되는 장면을 애니메이션으로 표현하지 않고 다큐멘터리처럼 실사 영상을 삽입한 것이 인상적이었어요. 그만큼 파괴되는 환경에 대한 메시지를 강하게 환기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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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우 2096>에 등장한 파벨라의 모습   ⓒ <리우 2096> 공식 티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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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더미 위에 앉아 자신이 사는 도시를 바라보는 청년과 쿠카   ⓒ 네이버 영화



3. 두 영화가 시사하는 바가 있다면 어떤 점일까요?


설희: <리우 2096>에는 기억에 남는 명대사들이 많았어요. 저는 명대사로 이 영화의 시사점을 말하고 싶어요.


“과거를 모르고 사는 건, 어둠 속을 걷는 것과 같다.”


브라질 원주민의 전설이 이야기 전반에 흐르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과거 부족의 명맥을 잇기 위해 불멸의 존재가 된 남자주인공이 미래에까지, 600년이라는 긴 세월을 살아내며 투쟁한다는 설정이 신선했지요. 무엇보다 잊혀서는 안 될 역사 속 민중들의 투쟁을 짚어가며 볼 수 있었어요. 1500년대 프랑스와 포르투갈의 원주민 식민 지배, 1800년대 노예제, 1980년 군부 독재, 2096년 수자원 독점으로 말이죠. 


“우리의 투쟁의 흔적이 역사책 속에선 하나의 사건에 불과하다.”


이 말이 제일 기억에 남는 대사였어요. 600년의 브라질 역사 속에는 언제나 불평등과 폭력에 맞선 민중들이 있었습니다. 그 치열했던 투쟁의 순간들이 역사책 속에선 그저 한 줄의 문장에 그치거나 이해관계에 얽힌 단어로 바뀌어 쓰이기도 하죠.


주인공은 군부독재에 항거하는 혁명에 가담하며 “이번에도 약자의 편에 서게 됐다.”는 말을 남기는데요. 개인적으로 현대에도 이렇게 폭력에 끊임없이 맞서 싸울 용기를 가진 사람이 있을까 되돌아보게 됐어요. 


“빈민들만이 부정의에 대항해서 싸우는 도시의 의적이 된다.”


제가 정말 무서웠던 건 기득권과 부유층의 모습이었어요. 2096년 수자원 독점으로 인해 물보다 석유가 더 싸지는 시대에 공평한 분배를 위해 싸우는 게릴라들을 잡고자 혈안이 되어 있는 사람들은 다름 아닌 부유한 시민들이었습니다. 충격이었죠.


“정의를 위하여, 끊임없이 투쟁하라.”


시대별로 모습을 달리한 폭력과 부조리를 대할 때,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맞설 것인가, ‘투쟁할 것인가? 편승할 것인가?’ 라는 질문을 하게 되었어요. 저 스스로 정의를 어떻게 실천해야 할지 생각했습니다. 다시 태어나도 주저 없이 투쟁을 선택하는 주인공들의 용기가 제 안일한 태도를 무색하게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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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로 환생한 남자주인공의 모습(위) / 2096년 리우데자네이루와 예수상(아래)   ⓒ 네이버 영화 



아이의 눈으로 바라본 부조리한 세계


희설: 저는 <보이 앤 더 월드>를 보면서 2013년에 방글라데시에서 일어났던 의류공장 붕괴사고가 생각났어요. 이 사건으로 인해 글로벌 의류 기업이 방글라데시에서 싼값에 옷을 공급받는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기업들의 책임의식이 문제화됐었죠. 비단 기업의 책임의식뿐만이 아니라 우리가 늘 입는 옷이 ‘어디서, 어떻게’ 오는지도 이야기되었는데, 이 영화에서는 쿠카의 여정을 통해 그러한 의류생산 시스템의 부조리함을 드러내고 있어요. 쿠카가 여행하며 만난 사람들은 모두 비인간적인 근무환경에서 옷 만드는 일을 하고 있었어요. 길 잃은 쿠카를 구해준 할아버지는 드넓은 목화농장에서 온종일 목화솜을 운반하지만 끝나고 받는 돈은 동전 한 닢이 전부이고, 도시에서 만난 청년은 농장에서 조달된 목화솜으로 면직물을 만드는 공장에서 일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청년보다 수십 배 빠른 속도로 천을 짜는 기계가 도입되면서 일자리를 잃게 돼요. 여기에서 끝나지 않고, 생산된 면직물을 실은 선박을 바다로 내보내는데 공중에는 유리로 감싸진 반구 형태의 섬들이 둥둥 떠 있어요. 그곳은 쿠카와 청년이 있는 도시와 달리 모든 것이 쾌적해 보였어요. 선박이 이 밑을 지나는 순간, 컨테이너가 활짝 열리면서 천이 멋진 옷으로 재단되고, 포장되어 반구 모양의 섬으로 빨아 들여져요. 이런 장면을 통해 청년이 사는 도시를 남반구 국가들로, ‘반구 섬’을 북반구의 선진국들로 대응시켜볼 수 있었어요. 감독은 이렇게 점점 양극화되어 가는 세계를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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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 앤 더 월드> 속 할아버지가 일하는 목화농장의 모습   ⓒ 네이버 영화 


이외에도 도시에서 축제를 벌이는 시민들과 이 시민들을 탄압하려는 진압군이 각각 무지갯 빛과 검은색 새로 변해 싸우는 장면이 있는데, 이는 독립 이후에 독재자의 집권과 쿠데타가 지속된 브라질의 역사에 대한 은유로 보였어요. 진압군은 ‘코끼리 탱크’(어린아이인 쿠카의 눈에는 탱크가 코끼리 모양으로 보여요.)를 대동하고 시민들의 무지갯빛 새를 해치워 버려요. 


또, 영화 속에서 인물들이 포르투갈어를 거꾸로 말하는 것도 인상적이어서 그 이유를 생각해봤어요. 약 300년간 브라질을 식민지배한 포르투갈은 브라질의 자원들을 착취해 진보를 이뤘죠. 포르투갈어를 이러한 진보의 상징이라고 한다면, 그런 진보를 뒤집어서 외계어처럼 사용하는 건 이 영화의 전반에 걸쳐 드러나는 현대사회의 모순을 짚는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도시를 가득 채운 물질적인 풍요와 화려함은 오직 소수에게만 허락되고, 번영을 약속하는 산업화와 끊임없는 성장의 추구가 지구의 환경 파괴를 초래한 것처럼요. 우리가 지금까지 개발과 발전을 멈추지 않고 있는 것은 모두가 행복하기 위해서일 텐데,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영화에 묘사된 많은 폐해들을 보면 그것들을 발전의 대가로서 ‘좀 참아야 하는 것’이나 ‘아름다운 구슬땀’과 같은 말로 미화할 수 없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돼요. 그렇다면 나아가 이제 어떤 발전을 상상해야 할까요? 라는 질문이 우리 앞에 남는 것 같아요.   



아직은 만나지 못한 ‘새로운 세계’


기사를 마무리할 즈음 ‘새로운 세계(A New World)’를 슬로건으로 한 리우 올림픽이 폐막했습니다. 이 ‘새로운 세계’를 건설하기 위해, 올림픽 경기장 인근 파벨라 아우토드르무(Autódromo)의 집들이 강제 철거됐습니다. 그 곳에 살던 600 가구는 쫓겨났고, 어느새 20 가구만이 남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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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우 올림픽 경기장 인근 파벨라 아우토드르무 집이 강제 철거되는 장면 ⓒReuters



올림픽의 그늘에 가려 우리가 지나친 지구촌 이웃. 세계인들의 축제는 이렇게 도시 빈민들의 강제 퇴거를 동반하고 있습니다. 1988년부터 2008년까지 20년간 무려 200만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강제 퇴거 등의 형태로 거주지에서 쫓겨난 현실.[2] 두 영화가 보여준 부조리와 폭력은 이렇게 우리 곁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세계인의 함성은 떠났지만 삶의 터전을 잃은 도시 빈민들은 그들의 보금자리를 여전히 돌려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수많은 감동과 승리의 스토리를 전한 올림픽이었지만, 우리가 바라는 ‘새로운 세계’는 아직 만나지 못했습니다.




기사 입력 일자: 2016-08-30




작성: 권희설 OWL 기자단 / noonseol@gmail.com

      김설희 OWL 기자단 / chacabee@naver.com





[1] 브라질 국기 가운데에 적혀 있는 표어. 프랑스 사상가 오귀스트 콩트의 실증주의 사상의 격언으로부터 유래된 말이다.

[2] 1988년부터 2008년까지 올림픽은 200만명 넘는 사람들을 살던 곳에서 쫓아냈다, 허핑턴포스트, 2016.08.19 

http://www.huffingtonpost.kr/2016/08/19/story_n_11601786.html#c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