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에 기반한 국제개발 모금홍보, 조금만 더 속도를 내자
 
 

마음대로 만들어냈던 이미지
 
개인적으로 2008년은 자원봉사자로 방글라데시에서 국제개발협력 분야를 처음 경험했던 해이자, 동시에DSLR 카메라를 처음 손에 넣었던 해이기도 하다. 방글라데시 말도 조금씩 알아듣기 시작하고, 카메라도 손에 익어갈 무렵, 구불구불 이어진 빈민가 사진을 찍다가 지금 생각해도 낯 뜨거워질 만한 부끄러운 경험을 했다. 허름한 집 앞에서 힘없이 아이를 안고 있는 한 아주머니를 무심히 찍고 지나치려는데, 그 분의 입에서 혼잣말처럼 나온 말은 “당신은 그렇게 사진을 찍고 다녀서 행복합니까? 나는 마음이 좋지 않습니다”라는 말이었다. 방글라데시 말을 못 알아들은 것처럼 황급히 자리를 떠났지만, 한동안 얼굴이 화끈거려 카메라를 꺼내기 쉽지 않았다.

집 안과 집 밖을 구분하기 어려운 낡은 판잣집, 해진 옷을 입은 아이들, 나이를 알 수 없을 만큼 피로하고 주름진 얼굴의 사람들. 지금 생각하면 그런 모습을 찍는 것이 좋은 사진의 정수라도 되는 것 마냥, 혹은 그런 이미지들을 보면 누구나 바로 우리 단체에 후원하게 될 것 마냥 그런 이미지들에 집착했었다. 하지만 정작 그렇게 찍은 사진에는 그 아주머니가 어떤 사람인지, 힘없이 아이를 안고 있던 것이 가난 때문인지 단지 더위 때문인지 전혀 알 수 없는, 그냥 내 마음대로 해석한 방글라데시 빈민가 가난한 모자의 모습만 남아 있을 뿐이었다.
 
방글라데시에서 돌아온 후에도 국제개발협력 모금홍보 분야에서 일하며, 다양한 국가에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듣고 사진을 찍었다. 그들의 어려움이 부각되고 강조된 사진을 찍거나 종종 과장된 이야기를 만들면서도, 방글라데시에서 만났던 그 아주머니의 낯 뜨거워지는 말을 잊을 수 있었던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이미지들이 그들에게 도움을 주는 후원을 만들어 내고 있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그리고 실제로 이런 이미지들을 차용한 사진, 영상은 어려운 사람을 보고 지나치지 못하는 마음 따뜻한 후원자들을 많이 찾아냈고, 그 결과 도움이 필요한 많은 사람들을 도울 수 있었던 것 또한 명백한 사실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러한 경험으로 인해 동정을 유발하는 이미지나 텍스트 없이 잠재 후원자들의 후원을 유도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 것도 역시 사실이다.    
 
 
그러나 이미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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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리티워터 단체 홈페이지 메인 이미지    ⓒcharitywater

그러다 우연히 알게 된 단체가 있다. 이미 너무나 유명한 채리티워터(www.charitywater.org)라는 단체이다. 흔히 말하는 동정 모금을 위한 이미지들만 보아오다 이 단체의 홈페이지 첫 화면을 보고 받았던 충격을 잊을 수 없다. 식수를 지원하는 것이 주 사업인 단체의 홈페이지 첫 화면에는 물이 부족해서 쩍쩍 갈라져있는 땅이나, 작고 어린 아이가 메마른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커다란 물통을 힘겹게 들고 가는 등의 이미지가 없다. 장난감 나무 기타와 함께 힘차게 선 두 발로 노래 부르는 듯한 신난 표정의 아이 사진(밝은 표정 덕에 옆에 놓인 물통에 깨끗한 물이 가득 차있을 것으로 상상된다), 깨끗한 물이 펑펑 나오는 수돗가에서 시원하게 얼굴 씻고 있는 사진 등이 메인에 노출되어 있다. 한 단계 더 들어가 캠페인 글과 사진들을 살펴보면 이 단체의 홍보 기조를 좀 더 명확히 알 수 있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의 문제 상황에 집중하기 보다는 깨끗한 식수가 생겼을 때 그들이 어떻게 변할 수 있는지, 어떻게 더 나은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되는지에 집중하고 있다. 홈페이지, SNS 등 이 단체의 모든 매체에서 깨끗한 물을 지원할 수 있다면 생겨날 긍정적인 변화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이런 사례 등에도 불구하고, 아직 우리나라 국내 모금홍보 영역이 지금까지도 도움이 필요한 대상의 문제점을 부각하는 것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몇 가지 있다. 지난 6월 한국인권재단에서 주관한 <인권기반 개발협력 애드보커시 교육>에 다양한 NGO 실무자들이 모여 관련된 이야기를 나누었다. 대형 단체부터 작은 규모의 단체까지 각 기관의 모금홍보 실무자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 이야기들을 모아보면 대략 아래와 같이 나눌 수 있다.


1. 눈 앞에 놓인 실적, 그리고 한정된 기회

단체 규모와 상관없이 실무자들은 한정된 기회를 갖는다. 이 기회는 관련 예산일 수도 캠페인 횟수 일수도, 혹은 관련 콘텐츠를 촬영할 수 있는 출장 기회이기도 하다. 각 기회들은 후원자들의 후원금이 고스란히 사용되게 되는 것이고, 이는 굳이 윗선에서의 압박이 없더라도 후원금의 소중함을 아는 실무자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부담감이다. 그 동안 국내에서 좋은 성과를 내온 동정심을 자극하는 캠페인이 100점 중에 50점 정도의 효과를 낼 수 있다 하고, 밝고 긍정적인 이미지의 캠페인이 0점에서 100점 사이의 불분명한 효과를 낼 수 있다고 하자. 대부분의 실무자들은 한정된 기회와 예산 앞에서 전자를 선택할 수 밖에 없다. ‘그래 아직은 아닌 것 같아’라고 스스로 위로하며 우는 아이 사진을 한 장 더 쓰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생각하게 된다. 아직 우리나라에서 밝고 건강한 이미지의 캠페인은 시기상조라고. 이러한 생각은 가난하고 작은 어린 아이의 상처나 장애의 모습이 클로즈업되자마자 후원 전화가 불 난 듯 걸려 오는 모금 방송을 지켜보며 더 굳어지게 된다. 

2. 그때까지 기다릴 수 있을까?

실무자들 중에 ‘빈곤포르노’라는 말을 좋아하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몇 년 전부터 회자되어온 이 말이 실무자들 마음에 상처가 되고 딱지처럼 내려 앉은 지 이미 오래다. 점점 더 자극적인 이미지를 제공해봐도 이제 더 이상 자극의 정도와 후원 신청이 크게 비례하지 않는 것이 보인다. 지금까지는 시기상조였다며 외면했지만, 이제는 변해야 되지 않을까라고 생각한지도 사실 이미 한참을 지났다. 최근에는 캠페인이 너무 자극적이라고 후원을 중단하는 사람들도 있고, 좀 더 불쌍한 사람들을 돕고 싶다고 후원을 중단하는 사람도 있어 혼란스럽다. 단체 내부에서도 한쪽에서는 인권에 기반한 훌륭한 캠페인을, 그러나 다른 한 쪽에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처럼 후원실적을 내달라 주문한다. 현지 주민, 아이들의 밝고 씩씩한 모습을 보며, ‘멋진 캠페인이다!’라고 생각하게 하는 것은 쉽다. 이 단계를 넘어 그런 모습을 보고 사람들이 후원 신청을 자발적으로 하는 그때가 오기는 할까 고민한다. 그때까지 내가, 우리 단체가 기다릴 수 있을까?

3. 시도는 이어져야 한다
그럼에도 실무자들이 한 목소리를 낸 것은, 인권에 기반한 모금홍보 시도는 이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잠재)후원자들의 인식을 바꿔 가는 것 또한 우리가 해야 할 영역 중에 속해있다. 또한 현지의 주민, 아이들을 도움이 필요한 사람으로 대상화하여 그들이 가지고 있는 긍정적인 면을 (잠재)후원자들에게 애써 감추는 것 또한 멈춰야 할 시간이 왔다는 것에 모두 공감했다. 이제 우리에게는 어떻게 하느냐의 문제가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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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드비전의 ’잘가요 월드비전’(상)  ⓒ월드비전 / 
굿네이버스의 ‘Standing’ 캠페인 이미지(하)  ⓒ굿네이버스


만약 불과 몇 년 전이었다면, 위에서 언급한 채리티워터 사례와 극명하게 대비되는 한국 NGO의 홍보 사례들을 충분히 언급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우리나라 모금홍보 영역에도 많은 변화들과 긍정적인 시도들이 시작되고 있다. 한국월드비전에서 진행한 ‘잘가요 월드비전’, 굿네이버스 ‘Standing’ 등의 캠페인은 문제상황을 부각하기보다는 이미 후원을 통해 변화된 사례들, 작은 도움만 있다면 현지 주민들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다는 메시지를 주는 좋은 예시이기 때문이다. 불과 얼마 전만 하더라도 이러한 시도들을 국내 모금홍보 영역에서 찾아보기란 정말 힘들었다. (그렇다고 위에서 언급한 단체를 포함하여 국내 단체들의 캠페인 기조가 대부분 이렇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굳이 잘된 사례들, 특히 대형 단체들의 예를 든 것은 동정 모금을 바탕으로 크게 성장한 단체들이 이제는 인권에 기반한 모금홍보 방향으로 먼저 앞서 가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모두가 함께 봐도 괜찮은 캠페인, 그리고 그런 캠페인을 환영하는 후원자들
  
긍정적인 몇몇 시도들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속도가 너무 느리다. 위에서 언급한 대로 대형 단체들은 큰 성과를 이뤄냈던 과거의 경험으로 인해 기존의 방법을 완전하게 내려놓지 못했고, 중소 단체들은 한층 치열해진 모금홍보 영역에서 한정된 자원으로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안전한 방법을 찾기 위해 기존 방법을 답습하기도 한다. 하지만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동정심을 자극하는 이미지로 모금을 할 수 있는 시간은 이제 정말 많이 남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제는 인권에 기반한 모금홍보 영역을 구축하기 위해 각 실무자들이 조금 더 노력하고 속도를 내면 좋겠다. 속도를 내야 한다. 각 실무자들과 단체들이 최소한의 기준선을 가지고 실천해보기를 바란다. 최소한 현장에서 아이와 주민들 사진을 찍고 그들의 어려움이 부각된 데 대한 미안한 마음이 들어 못 보여 줄만한 사진이나 영상은 찍지도 올리지도 않기를. 활동가, 후원자, 잠재후원자 그리고 현지 마을주민과 아이들 모두가 함께 봐도 괜찮은 사진, 콘텐츠가 많이 만들어지기를 바라본다. 지금까지 단체들 간 과열된 모금 경쟁, 무조건적인 실적 달성을 위해 자극적인 이미지들과 홍보 등으로 극심한 피로를 느꼈던 후원자들도 이러한 변화를 분명 환영할 것이라 믿는다.

참고로 동정심을 자극하는 이미지 하나 없이 2006년 뉴욕의 한 작은 방에서 시작한 채리티워터는 현재까지 16,000개 이상의 식수 프로젝트, 연간 후원금 한화 약 500억 이상의 후원금을 모금한 단체로 성장하였다(2014 기준).



기사 입력 일자: 2016-08-30



작성: 길충민 지구촌나눔운동 모금홍보팀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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