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WL 100호의 감회가 남다른 이들이 들려주는 OWL 제작 뒷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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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회의 모습     ⓒODA Watch

 


2006 11, 1호로 시작했던 OWL 100호를 맞았다. 독자일 때는 몰랐지만 편집위원이 된 후 제작과정에 참여하면서 얼마나 많은 이들의 노고로 OWL이 만들어지는지 알게 됐다. 매달 열리는 편집회의는 생각보다 빨리 돌아왔고, 뚝딱 선정될 줄 알았던 기사는 한 꼭지마다 나름 치열한 고민과 회의를 거쳤다. 매달 별 문제없이 발행되는 것 같은 OWL의 뒤에는 OWL을 만드는 이들의 우여곡절이 담겨 있다. 이들은 언제나 독자들을 향하며 국제개발협력 분야에 필요한 목소리를 '전달'해왔다. 이번 100호를 맞아 그 동안 OWL 발행인, 편집위원이란 이름 뒤에 가려져있던 그들의 목소리를 담아보고 OWL 제작과정의 뒷이야기를 파헤쳐보려 한다.


OWL을 만드는데 애써온 사람들이 참 많지만 대표적으로 다음 인물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現 편집장: 한재광

역대 OWL 편집 담당자: 윤지영, 권유선, 조이슬

편집위원: 강하니, 남종민, 송유림


 

■ 그전에 잠깐! OWL은 어떻게 만들어지나요?

OWL 발행은 한 달을 기준으로 다음과 같이 이뤄집니다.


1주차: 발행, 편집회의

2-3주차: 원고작성

4주차: 편집위원 원고 1차검토, 편집인 재검토 및 교정교열, 편집장 최종감수

4주차: 전문 디자이너에게 디자인 의뢰, 편집인 최종 확인  



현재 ODA Watch 사무국의 중간관리자 역할을 맡고 있는 윤지영 팀장은 OWL의 초기부터 발행을 도맡아 왔다. 한동안 다른 실무자에게 OWL 발행 작업을 넘겨주었다가, 지난해 11월부터 다시 OWL 발행 전 과정을 담당하고 있는 그녀에게 OWL 100호와 함께해 온 이야기를 들어본다.



OWL은 어떻게 탄생했나요?
 2006년 11월에 OWL 1호가 탄생했어요. ODA Watch가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라는 단체에서 처음 시작하면서, 초기에는 주로 국제개발협력에 관심 있는 청년들과 함께 관련 분야에 대한 학습 활동을 했어요. 그러다가 개발협력에 대한 정보를 전달하는 매체가 없으니까 뉴스레터 식으로 발행을 해보기로 했죠. 그래서 이름도 OWL, ‘ODA Watch Letter’ 라고 붙였고요. 초반에는 청년 활동가들이 참여한 행사 내용을 소개하거나, 학습하면서 찾은 자료를 정리해 공유하는 정도였어요.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OWL과 ODA Watch 활동에 대한 기대가 커지는 걸 느꼈어요. 그러다 2008년부터 점점 비판적 시각을 제공하는 ODA Watch의 색깔을 OWL을 통해서도 적극적으로 반영하려고 했던 걸로 기억해요.



OWL 기사 선정 및 인터뷰어의 기준은 무엇이고 어떻게 정해지나요?
 OWL 기사선정 기준 중에 하나는 시의 적절한 이슈를 제기하느냐에요. 독자들과 공유할 가치가 있는지가 중요해요. 매월 주제를 고려할 때 그 당시 함께 생각해보면 좋을 주제들을 선정해요. 인터뷰 대상자를 선정할 때는 국제개발협력에 대해 생각해 볼 거리들을 두루 폭넓게 경험한 이들, 현직의 동료나 선후배들에게 자신의 경험에서 우러난 교훈을 들려줄 수 있는 대상을 고르고요. 특히 이미 많은 경험을 한 선배그룹들의 경우에는 이제 막 이 분야에 뛰어드는 젊은이들에게 그들의 지혜를 나눠주기를 부탁하는 편이에요. 청년들, 젊은이들의 이야기 속에서는 좌충우돌하는 삶 속에서 같이 생각해 볼 수 있는 이야기 거리도 제공하려고 하죠.



100호까지 오면서 OWL이 다루는 기사의 방향은 어떻게 변해왔나요?
 예전에는 단순히 정보를 소개하는데 그쳤다면 최근 몇 년은 한국의 국제개발협력을 돌아보고 성찰하는 게 많아졌어요. 왜냐하면 한국이 국제개발협력 분야에서 급성장하면서 정부, 시민사회를 막론하고 충분히 성숙하지 못하고 달려가기 바빠 놓치는 부분이 많거든요. 성찰할 필요가 있겠다는 문제의식이 생겼어요. ODA Watch도 조직적으로 점차 커지다 보니까 발전에 대한 지향이나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많이 놓치게 되는데 우리 스스로를 돌아보자는 측면도 있었고요.



OWL이 내는 비판적인 목소리에 대한 독자들의 반응은 어떤가요?
 너무 ‘성찰’을 강조하니까 불편해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성찰이 필요는 하지만 당장 해야 할 일을 안 할 수 없지 않냐는 비판도 제기되죠. 그래도 다른 데서는 쉽게 내밀지 못하는 성찰의 목소리를 OWL이 지속적으로 내야 한다고 생각해요. 
 


OWL 발행 후 독자들의 반응이나 독자층은 어떻게 변해왔나요?
초기 독자들은 학생들이 많았는데, 지금은 실무자들이 꽤 많아졌어요. 점점 국제개발협력 시장이 커지고 종사자가 많아지는 영향이라고 생각해요. 여전히 새롭게 구독 신청하는 사람들 중 대다수는 학생들이지만, 가장 영향력을 받는 사람들은 실무자들, 특히 현장에 계신 분들이라고 생각해요.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매월 상당히 다양한 정보와 심층적인 시각을 전달하는 OWL이 반갑다고 하더라고요. 국내보다 해외 현장에서 활동하고 있는 사람들이 더 열심히 읽는다고 들었어요.


OWL 독자들이 바로 바로 반응을 주는 편은 아니에요. 어떤 글이 나갔을 때, 그 글에 대한 독자들의 의견이 우리에게 직접 소통되는 건 많지 않았어요. ‘누군가는 이렇게 생각하나보다.’ 하는 것이 아닐까 싶어요. 가끔 공적으로 혹은 사적으로 만나는 동료들에게서 ‘아무도 하지 않는 이야기를 OWL이 해줘서 참 좋다’는 이야기를 듣곤 해요. 반면에, OWL 글 속에서 비판을 당하는 대상자들은 반응을 해요. 특히 정부는 그들을 향한 지적이나 비판에 대해서 바로 반응하는 편이죠. 한때는 OWL을 보내고 나면 항상 다음 날 정부기관으로부터 전화가 올까 봐 늘 긴장을 하곤 했어요.(웃음)



 OWL만의 특징은 무엇일까요?
 ‘시민, 자원활동가가 스스로 만들어내는 매체’라는 것이에요. 저희가 전문적인 출판업체는 아닌데 종합적인 정보를 비판적인 관점을 곁들여 제시하려고 노력해요. 온라인 월간지이긴 하지만, 적은 인력으로 한 달에 한번 내는 게 쉬운 건 아닌데 (발행일이 늦어지긴 해도) 꾸준히 그 호흡을 지켜와서 어느새 100호를 맞이하게 된 점은 꽤 자랑스러운 점이에요. 자발적으로 참여해온 활동가들과 실무자들, 편집위원들의 힘이죠. 원고료도 없고 편집, 교정, 교열 모두 대가를 바라지 않고 해요. 담당 실무자로서는 원고 기고자들에게 원고료를 못 줘서 안타까워요. 거의 단골처럼 기고해주는 분들이 계신데, 그 분들이 원고료를 요구했으면 금액이 엄청날 거에요.(웃음)



OWL을 만들어오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요?
처음에 저 혼자 편집 일을 맡았을 때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초기에는 발간일이 매월 말일이었는데, 그 때는 사무국 인력이 저 혼자여서 OWL 편집/발행도 혼자서 했어요. 며칠을 밤을 새서라도 발행일을 맞추려고 애를 썼어요. 신입이어서 그랬는진 몰라도, 발행일을 못 맞추면 큰일나는 줄 알았거든요.(웃음) 늦게까지 제가 혼자서 작업 하고 있는 걸 아니까 교정교열하고 최종승인하는 역할을 맡으셨던 이선재 선생님(당시 편집위원회 책임자)과 최은정 선생님이 대기하고 계시다가 제가 보내드리면 바로 검토하고 승인해서 보내주시곤 했어요. 세 명이 트리오로 각자의 공간에서 일을 하고 있었던 거에요. 오늘은 무조건 나가야 한다는 철저한 마감의식(?)을 공유하고 있었던 게 감격스러웠어요. 작업이 완료되고 발송 버튼을 누르면 한번에 약 5000명에게 가요. 저는 그때 그걸 출산의 고통이라고 표현했는데 묘한 희열을 느꼈어요. 그렇게 일을 하고 새벽녘에 택시를 타고 집에 가면서 서로한테 수고했다고 문자를 보내면, 그제서야 안도의 숨을 내쉬곤 했죠. 그렇게 긴밀하게, 끈적하게 밀착해서 일했던 것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아요. 그분들은 자원활동임에도 불구하고 OWL을 왜 만드는지에 대해 강하게 가지고 있던 목적의식이 저에게까지 전달되었고, 저한테는 큰 힘이고 동기를 불어넣어줬어요. 몸은 고돼도 힘들다고 생각하진 않았어요.



OWL을 만들면서 힘들었던 점은요? (내가 왜 이걸 시작했나! 그만두고 싶었을 때?)
때려 치고 싶었을 때? 그런 건 없는데(웃음). 기사 조정하고 원고가 안 들어올 때 독촉하는 건 꽤 힘들어요. 원고료는 못 주면서 독촉하는 게 미안해서 모질게 요청하지도 못하고 속만 타 들어가죠. 발행일은 점점 다가오는데. 기사가 갑자기 펑크 날 때는 힘들어요.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요?
독자들이 OWL에 대단한 기대를 걸고 있지는 않다고 생각해요. 설사 기대가 높더라도 우리가 그 기대를 완벽히 충족해야지 생각하는 것도 욕심이라고 생각하고요. 내부 역량이 그렇게 전문적이지도 않고. 다만 꾸준히 개발협력에 대해 고민하게 만드는 매체를 만들어가고 있다는 점에 자부심이 있고 독자들도 OWL을 통해서 이런 생각을 더 많이 했으면 해요. 더 발전 하기 위해서, 누구에게나 권장할 꽤 괜찮은 잡지가 되려면 독자들의 관심, 반응이 더 많이 필요해요. 처음부터 소통을 위해서 OWL을 시작한 것이거든요. 독자들이 우리의 생각에 얼마나 공감을 하는지, 유용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는지 교류하고 싶고 소통하고 싶었는데 독자들과 충분히 소통하지 못하는 점은 아쉬워요. 우리도 노력해야겠지만 독자들도 조금 더 많은 이야기들을 나눠주면 좋겠어요.



앞으로의 OWL에 바라는 점 및 OWL 200호 때 그리는 나의 모습
 인력, 여력이 부족해서 종종 발간하는 것에 급급할 때가 있는데 가끔은 발행인, 편집인들도 시야가 좁아지는 느낌이에요. 우리가 시야를 확장해서 독자들이 뭘 원하는지 뭐가 더 필요한지 귀담아 들어서 녹여내면 좋을 거 같아요. 또, 좀 더 재미있게 읽힐 수 있으면 해요. 지금은 대중적이지는 않은 것 같아요. 앞으로는 훨씬 대중적으로 갔으면 좋겠어요. 200호는 상상할 수가 없어요. 너무 멀어요. 6년, 7년 더 있어야 되는데 글쎄 OWL이 200호까지 나올까? 잘 모르겠네요.(웃음)



 다음으로는 전(前) ODA Watch 간사였던 조이슬씨를 소개한다. 들은 소문에 의하면 OWL 발행 작업으로 가장 많은 고생을 했다고 한다. 지금은 다시 학생으로 돌아가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조이슬씨에게 OWL을 발행한 소감에 대해 물었다.  


OWL 작업에는 언제부터 언제까지 참여하셨고 어떤 역할을 하셨나요? 기억에 남는 일들은요?
 저는 2012년부터 Watch에서 간사로 활동했는데, 그때 처음 맡은 일 중에 하나가 OWL 발행이었어요. 아직도 처음 발간한 호수와 날짜를 기억해요. 바로 2012년 3월 5일에 발간한 63호! 사실 그 이전에도 인턴 활동 하면서 OWL 편집회의도 참여하고, 작은 기사도 종종 쓰고 했었는데요. 정식으로 근무하기로 결정한 순간부터, 어느새 운명처럼(?) 제 담당 활동이 되어있더라고요. 굉장히 즐거웠어요. 물론 힘든 순간들도 있었지만.(웃음) 돌이켜보면 OWL 작업을 하면서 단체에 대해서도, 또 개발협력 자체에 대해서도 기초부터 차근차근 배워나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돌이켜보면 정말 소중한 순간들이었어요.


제가 단체를 나오기 전까지 마지막으로 작업했던 호는 94호였는데요. 한재광 편집장님과 함께 (제가 담당하는) 마지막 호를 준비하면서, 정말 100호가 머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나누던 게 엊그제 같은데, 이렇게 100호를 기념하며 인터뷰를 하고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아요. 다시 한번 정말 축하 드립니다.


저는 OWL 담당자로서, 매월 OWL이 발간될 수 있도록 기초 아이디어를 기획하고, 조율해서 작업 과정을 추진하는 역할을 했어요. OWL이 한 달에 한번씩 발간되는 잡지라서, 생각보다 빡빡해요. 사실 잡지 한 호를 발간하기 위해서는 아주 많은 사람들의 애정과 노력이 필요하거든요. 한 호마다 평균 10개의 기사가 포함되는데, 그런 글들을 기고해주시는 분들도 단체 내, 외부적으로 다양하고, 또 글을 교정, 감수하는 과정에도 편집위원들께서 기여해주시기 때문에 정말 여러 명의 힘을 합쳐야만 세상에 나올 수 있어요. 이슈를 지속적으로 관찰해서 대응해야 하는 정책 기사들의 경우 주로 직접 쓰기도 하고, 다른 원고들 수정도 보고, 마지막에 외부로 독자들에게 발송하기 전에 편집을 했는데요.


기존에 뉴스레터 방식으로 발간했을 때에는 정해진 편집 툴에 따라서 비교적 손쉽게 작업했다면, 이후에 매거진으로 바뀌는 과정에서 난생 처음 인디자인을 배워서 손수 디자인 편집도 해보고 했죠! 그 시간들이 기억에 많이 남아요. 그래도 저희가 뉴스레터 형태에서 매거진 형태로 바꾸기로 한 결정이 사실 단번에 내린 것은 아니었고, 약 1년 여 동안 독자 의견도 받아보고, 이리 저리 물어가며 많은 사람들이 함께 내린 것이었거든요. 매거진으로 바꿨던 궁극적인 목적은 OWL 글들이 워낙 무겁고, 분량도 많다 보니까, 편집을 좀 달리해서 친숙하고 잘 읽힐 수 있도록 해보자는 취지였죠. 그런데 제가 디자인을 전문적으로 하던 사람이 아니었고, 포토샵조차 다루지 못하던 사람이 인디자인을, 그것도 책으로 배워가면서 했으니까 깔끔한 디자인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예쁘다고, 덕분에 보기 깔끔하고 편하다고 말씀해주시면 정말 반갑고 힘이 났던 것 같아요.그런데 OWL 자체가 아무래도 발간일을 앞두고 업무가 가중되는 형태이다 보니, 디자인 편집을 함께 하는 게 결코 쉽진 않았던 것 같은데 그렇지만 어느새 보면 한 호 나와있고 그러다 보니 3년이 흘러있더라고요. 하하.



OWL을 만들면서 힘들었던 점은요?

뭐 가장 힘들었던 건 아무래도 발간일 전날? 원고 마감일자와 발간 예정일 간 2주 간격이 있는데 어쩔 때는 발간일 전날에도 원고가 들어올 때가 있어서 촉박해요. 디자인 편집을 할 때는 제가 편집 툴에 익숙하지 않기도 하고, 마우스 클릭을 무한 반복하면서 어깨랑 눈이 무지하게 많이 아팠어요. 발간 예정일 전날이 휴무가 끼어있는 날들이 있어요. 그러면 휴일을 자동 반납해야 하니까 조금 속상하긴 했죠 그렇지만 일 할 때는 도리어 휴일이 끼어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었어요. 하루 종일 온전히 집중해서 작업할 수 있는 시간을 벌었(?)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이제는 ODA Watch를 떠났지만 외부에서 OWL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요?
오히려 활동을 그만두면서, OWL을 조금 더 객관적인 눈으로 볼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예전에는 아무래도 매달 고생하며 낳은 ‘내 자식’ 같다는 느낌이 있어서, 매번 만들 때마다 내가 독자라면 OWL이 어떻게 느껴질까? 라고 생각하려고 노력했지만, 넓게 보지 못했던 것 같거든요.


정말 독자가 되고 보니까, OWL이 어렵네요. 그렇지만, 도리어 그런 부분들을 고려하면 OWL이 꼭 필요한 매체, 전달 창구라는 생각이 들고요. 관심을 가진 일반 시민들에게도 지금 현안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를 심도 깊게 파악할 수 있게 해주니까요. 또 OWL이 지니는 반성적이고, 성찰적인 목소리와 메시지들은 한 걸음 떨어져서 보니 그 진가를 더욱 알 수 있게 되는 것 같아요.     


예전에 일할 때는, OWL에 너무 많은 기능들이 복합적으로 담겨있어서 조금 아쉽게 느껴졌어요. 매달 발간 하면서도 타깃 독자가 누구고, 우리는 누구한테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거지?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그런데 지금 보면 OWL에 내재되어있는 복합적인 성질 그 자체가 OWL인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OWL이니까 할 수 있는 것들! 지금처럼 계속해서 함께해주면 좋겠어요.



OWL을 만들어온 사람들을 이야기하자면, 윤지영 팀장과 조이슬 前 간사와 더불어 권유선 前 간사의 이야기도 빠질 수가 없다. OWL 발행일엔 어김없이 새벽 퇴근을 불사했다던 권유선 간사, 한껏 부푼 기대로 그녀를 만나 OWL에 대한 기억을 더듬고 싶었으나, 안타깝게도 일정이 맞지 않아 성사되지 않았다. 대신 짧은 전화통화로나마 OWL에 대한 그녀의 마음을 엿들을 수 있었다.



(ODA Watch를 떠난 시간이 꽤 예전이지만, 기억을 되살려서) 인상 깊고 좋았던 것은요?
기억에 아직 남는 건 OWL을 마감하느라 새벽 3시에 택시 타고 집에 들어가던 것이에요. OWL하면 새벽 3시에 들어가던 것이 뭐니뭐니해도 가장 기억에 남아요.(웃음)



애증의 새벽 야근인가요. 100호를 맞은 OWL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세요?
100호 축하 드리고 언제나 읽고 있어요. 항상 하면서 이걸 누가 읽을까 힘들었거든요. 이렇게 고생하면서 내는 게 무척 힘든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보니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분들이 읽고 있더라고요. 100호까지 온 이유와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다만 제가 OWL을 담당할 때도 과제였는데, 꼭지가 다양해졌으면 좋겠어요. 다양한 분야의 관계자들의 목소리가 반영되도록 말이에요. 앞으로도 OWL이 발전해나가는 모습, 응원할게요!!



이번에는 OWL 발행을 책임지고 지휘하는 그! 한재광 편집장을 통해 OWL의 미래를 그려보았다.


편집장의 역할은 뭔가요? 
 역할은 몇 가지로 나뉘는데 첫째로 편집위원들의 생각이 OWL에 잘 담기고 편집회의에 다양한 의견을 낼 수 있도록 조율을 하는 것이에요. 사무국 실무자들이 실무를 도맡고 있지만 잘 발간하도록 행정적으로 돕는 일을 하고 있어요. 두 번째로는 우리 사회에 목소리를 낼 주제를 선정하고 기사들간에 균형을 맞추는 일을 하죠.



OWL 편집장으로서 느끼는 책임감? 사명감은 어떤 것인가요?
 OWL이 끊기면 안 된다는 책임감. OWL은 단순한 소식지가 아니라 매달 출간되는 한국에서 유일하게 국제개발협력에 비판적인 시각을 담고 있는 매체에요. 단순히 정보전달이 아니라 생각과 주장을 하는 것이라서 어떻게 하면 우리 주장이 잘 담길 수 있을까 생각해요. 또 중요한 책임은 좋은 필자들을 발굴해서 그들의 목소리를 우리 사회에 잘 공유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에요. 해외에 나가면 가끔 OWL을 잘 읽고 있다는 분들을 만나요. 정말 신나고 기분 좋은 일이에요. 정보를 얻는 것에서 소외되고 어려운 분들이 꾸준히 읽고 계시다는 것에 너무 감사하죠. 힘이 납니다.



총 책임자로서 OWL 을 향한 고민이 있으시다면요?
OWL을 만드는 과정이 쉽지는 않아요. 어떻게 하면 좋은 독자들, 필자들의 목소리를 잘 담아낼까가 가장 큰 고민이죠. 그리고 어떻게 하면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할까, 앞으로 어떻게 변해야 할지 고민이에요.       



OWL에 기대하는 앞으로의 역할과 방향은 뭘까요? 어떤 미래를 그리시나요?
한국 국제개발사회의 문화를 바꾸는데 기여했으면 좋겠어요. 목소리를 담아서 문제 제기를 하는 것이 첫째 역할이고 깊이 생각하게 하는 주제를 던져야 해요. 한국의 국제개발협력이 빠르게 발전하기 때문에 제대로 다루지 못하고 있는  문화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함께 토론하며  바꾸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편집위원들은 청년활동가, 연구원, 실무자 등으로 다양하게 구성되어 있다. 편집위원의 조상격이라고 할 수 있는 이들, 강하니, 남종민, 송유림 편집위원을 찾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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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좌)남종민 (우)송유림 편집위원                                         ▲ 강하니 편집위원 



편집위원으로 합류하게 된 계기는요?

유림: 섭외를 당했어요(웃음)

종민: 애정과 충성심? 농담이고요. 일단 멋있어 보였고요. 개인적인 발전을 위해서였어요. 편집위원으로 합류하기 전에 기사를 한번 썼는데 OWL이 너무 어려우니까 시간을 내서는 혼자 안 읽게 되더라고요. 편집의원은 기사를 다 의도적으로 읽어야 하니까 OWL을 열심히 읽기 위해서 시작했죠.

하니: 저는 2009년 2월부터 ODA Watch 청년활동을 시작했어요. 그 때는 청년활동가들이 팀별로 활동하면서, 팀장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편집회의에 참여했었어요. 제가 청년활동가 DAC팀 팀장으로 활동해서 편집회의에 참여하고 기사도 쓰곤 했어요. 2년 정도 하다가 취직을 하게 되면서  잠시 청년활동을 쉬었어요. 그러다가 다시 2013년부터 활동을 시작했는데, 사무국에서 편집위원으로 저를 찾으시더라고요. 그때 왜 날 찾았지. 잘 모르겠네요.(웃음) 사람이 없어서?


편집위원으로 뭘 느끼셨어요?  청년으로서 OWL에 바라는 바가 있을까요?

종민: 제가 편집위원 할 때보다 OWL이 많이 어려워졌어요. 외부에 원고 요청을 많이 하니까 정보랑 질은 좋아졌는데 활동가들이 막 써서 올릴 수 없는 분위기에요. 너무 그렇게 되다 보니까 아는 사람만 읽어요.

유림: 저 때는 편집과정의 소통이 참 좋았어요. 기사를 쓰면 활동가가 한번 검토하고, 실행위원이 검토하고, 마지막으로 사무국이 검토했어요. 그러면서 담당 실행위원인 이선재 선생님 같은 분이랑 보고 서로 친해지는 계기도 되고요. 요즘에는 디자인이랑 외부적인 건 좋아졌는데 그런 과정이 좀 덜한 것 같아요.

종민: 저는 제가 기사를 쓰고 사무국의 검토 의견을 받았어요. 기사를 쓰면 피드백을 주고 봐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도움이 많이 될 것 같아요. 그때 기사를 검토해준 조이슬 간사님한테 저는 지금도 고맙다고 해요. 대학원보다 더 많이 배우고 도움이 되었던 것 같아요. 기사를 한번 쓰느냐 마느냐가 활동에 대한 애착의 정도를 결정하는 것 같아요. 활동가들의 기사가 늘어나고 청년으로서 편집위원의 역할이 활성화되면 역량도 늘고,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요.

유림: 초대 편집위원일 때는 OWL을 체계적으로 만들려고 갓 노력하던 시기라, 여러 역할을 했었어요. 재밌게 활동했던 것 같아요. 지금은 편집위원회가 꽤 체계적으로 자리를 잡았고, 편집위원들이 교정교열 등 감수 역할도 해요. 정책을 분석하고 비판적인 의견을 전달하는 것이 OWL의 주된 역할이고 기조이지만 한편으로는 시민사회를 대변하는 이야기, 청년활동가들의 역할이 줄어들어서 아쉬워요. 청년활동가들의 활발한 활동의 장이 되었으면 해요.

하니: OWL이 꾸준히 청년들이랑 시민들에게 널리 읽힐 수 있도록 공부를 많이 해야 할 것 같아요. 청년들이 만들어가는 잡지다 싶으면 일러스트레이터도 참여하고, 손글씨 그림하는 사람도 불러와보고, 사진도 많이 넣고 생각해 볼 거리 등도 던지고 그럴 수 있지 않을까요. 축제와 같은 OWL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음악으로 풀어내는 개발 협력이라든지 가슴에 던질 수 있고 공유할 수 있는 살아 숨쉬는 스토리들이 있는 잡지였으면 좋겠어요.   



위의 인터뷰에서 담지 못했지만 그 동안 기고와 편집 등 전 과정에서 참여하셨던 많은 분들께 큰 감사를 드린다. 한재광 편집장은 인터뷰 도중 이 말을 꼭 적어달라고 했다. ‘한국 국제개발협력의 역사를 말할 때 OWL을 100호 이상 냈던 사람들이 있었고, 땀을 내서 함께한 사람들이 있다고 기록될 것이라고, 정말 감사하다’고 말이다. 독자들께는 잘한 일에는 격려를, 만든 이들의 힘들었다는 애교는 그저 귀엽게 봐주시기를 부탁 드린다. 200호까지 부지런히 더 열심히, 더 울림 있는 이야기를 담으라는 조용한 압력으로 편집위원들에게 다시 작용할 것이니 말이다. 혹시 이 사람들을 보시게 된다면 OWL 잘 보고 있다는 한마디 해주시라. 이들은 그 한마디에 신이 나서 더 좋은 이야기, 가슴을 울리는 이야기를 전하기 위해 발로 뛰어다니며 또 다음 호 OWL을 준비할 것이다.





기사 입력 일자: 2015-05-22




인터뷰 및 작성: 조나연, ODA Watch 청년활동가 / nayeoncho1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