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요즘 텔레비전만 틀면 셰프들이 요리하는 광경을 한 채널 건너 한번씩 볼 수 있다. 이처럼 ‘쿡방’이 대세가 된 이유는 음식이 단순히 끼니를 때우는 수단이 아닌 하나의 이야기로, 작품으로, 문화로 풀이되는 것이 재미있어서가 아닐까 싶다. 식문화는 시간, 장소, 기후, 생활습관 등에 따라 제각기 다르기 때문에 무엇보다 사람들의 일상을 가장 잘 보여주는 매개체이다. 이에 아이디어를 얻은 OWL은 개발현장을 누빈 많은 활동가들의 입을 통해 현장 곳곳의 다양한 음식들과 이에 얽힌 사연을 소개해보고자 ‘음식으로 보는 개발현장’이라는 코너를 마련하게 되었다. 



필리핀에서 겪은 혹독했던 신고식



2009년 3월, 나는 KB-YMCA 대학생 해외봉사단 라온아띠 프로그램에 선발되어 해사한 단체티를 입고 필리핀 레가스피에 입성했다. 본 프로그램은 대학생 5인이 한 팀을 구성해 아시아 내 8개국에서 5개월간 활동하는 것[1]으로 필자 역시 동료들과 재난지역 정착촌에서 데이케어센터 수업보조, 수공예품 센터 업무 보조 등 마을의 생계활동을 도왔다. [라온아띠]는 파견지역의 YMCA와 협력해 활동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파견 즉시 YMCA와 관련된 모든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게 됐다. 그 첫 번째 자리가 바로 지금부터 설명하려 하는 ‘신고식’이었고, 그 자리에서 먹을 수 밖에 없었던 음식을 통해 두고두고 회자된 에피소드를 쌓은 날이기도 했다. 


그 날 행사명은 ‘initiation’이었다. 보통 ‘Welcome Dinner’와 같은 부드러운 이름으로 환영식이 이루어지는데 이 이름은 왠지 처음부터 낯설었다. 예감은 틀리지 않았고 모든 것이 끝난 이후 우리가 참여한 것은 ‘환영식’이 아닌 ‘신고식’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당일 우리가 초대받은 곳은 지역 YMCA 사무실. 새로 왔으니 '인사 정도 하겠지'라고 생각했지만 어리둥절하며 서 있던 우리를 맨 앞에 일렬로 앉히고 나서부터 놀라운 일들이 벌어졌다. 행사를 진행한 레가스피YMCA대학생 회원들은 준비한 것을 보여주었는데,  돌부터 시작해서 물이 들어있는 유리병과 안에 뭐가 들었는지조차 알 수 없는 밀폐용기까지 여러 가지가 있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이 음식들을 단계별로 먹어야 된단다. 우리는 그저 그 지역의 유명한 향토음식 중 하나겠지 싶었지만 말을 되짚어보니 언뜻 이런 말을 들은 것 같았다. “ I hate this moment to let you do this.” 그제서야 준비된 음식이 음식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이 처음으로 권한 것은 돌이었다. 그냥 돌 말이다. 한 번 깨물고 물로 입을 헹구면 되는 것이었다. 순간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건가 싶었다. 다행히 다음 순서는 과일이라고 해서 잠깐 행복했었다. 분명 멜론이라고 들었는데 앞에 수식어 하나가 더 붙었다. ‘Bitter’ melon. 열대과일의 천국 필리핀에는 정말 온갖 맛의 과일이 다 있었다. 

쭈글쭈글하게 썰린 그 멜론 조각이 혀에 닿는 순간, 쓴 것도 신 것도 아닌 뭔가 신비한 맛의 세계를 엿본 것 같으면서도 앞으로 난 미맹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다음에 먹은 것은 (그들의 말에 의하면) 누군가의 침이었다. 믿기 싫었고, 믿기지도 않았지만 색깔이 꼭 그것인 것도 같았다. ‘이걸 어떻게 먹어..’ 라는 의문을 가질 시간이나 주었다면 반항이라도 했을텐데 친절히 한 스푼 가득 떠 올려 내미는 걸 막아낼 길이 없었다. 그리하여 우린 그렇게 누구의 것인지도 모르는 침을 꿀꺽 삼켜버렸다. 갈수록 태산이었지만 분위기는 점점 극에 달했다. 


마지막이겠다 싶었던 네 번째. 현지인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을 함께해야 라뽀가 형성된다는 가르침을 받고 파견됐던 나는 그들이 즐겨 먹기에 권했을 그 음식을 어떻게든 먹어보려 했지만 극심한 고통을 맛보아야만 했다. 그들이 내민 것은 ‘소의 눈’이었다. 눈알 말이다. 그 눈알을 마주한 순간 심박수가 남달라졌다. 생김새로는 그것이 ‘눈’이라는 것을 알아볼 수 없었기에 어차피 먹일 작정이면서 ‘그건 소의 눈이야’라고 친절한 설명을 곁들여 준 그들이 미웠다. 충격을 분산하기 위해 가위바위보 전법을 쓰자고 했지만 내가 졌다. 결국 그 커다란 것을 입에 넣고 맛을 보다가 화장실로 달려가 변기에 뱉고 뭔가를 올려 보내려는 위를 진정시키려고 했으나, 방금 전까지 내 입 속에 누군가의 눈알이 들어있었다고 생각하니 헛구역질이 계속되었다. 속이 진정되자 마지막으로 악명 높은 그것이 등장했다. 파견 전 아주 많이 들었던 음식. ‘부화가 덜 된 달걀’ 이름하여 ‘발롯’이다. 달걀이 나타난 순간, ‘아, 이게 나온다면 정말 마지막이구나’ 싶었을 정도로 그것은 위대한 먹거리였다. 맛은 맥반석 달걀 같이 부드럽고 고소하지만 껍질을 깨부수는 순간 나를 경악케 했던 그것. 노른자 위에 살포지 얹어져 있던 그 모양새를 형용할 수 없는 것은 아직 병아리가 되지 못한 채 죽임을 당한 꾸물꾸물한 새끼였다. 운 없게도 나만, 껍질을 깨자마자 그 안에 있던 그 친구와 눈맞춤을 해버렸다. 몇 초간 공황 상태에 빠졌다가 정신을 수습한 후 부숴진 껍질을 이용해 꾸물꾸물한 그것을 긁어 내리고 맛을 보았다. 그리고 다 먹은 순간 맛있다는 생각을 해버렸다. 

 

별 생각 없이 시작했다가 된통 당한 신고식은 이렇게 끝이 났다. 나중에 알고 보니 모든 음식에는 나름의 의미가 담겨 있었다. 처음 돌을 씹은 것은 화산이 있는 레가스피의 자연과 친밀함을 느끼기 위한 의식이었고, 쓴 멜론은 본래 몸에 좋은 약용과일로 현지인들이 자주 먹는다고 한다. 충격을 주었던 ‘침’은 진짜 침이 아닌 계란 흰자였는데 끈적한 특성상 서로 끈끈해지자는 뜻이었다. 소 눈알과 발롯은 현지인이 즐겨 먹어서 우리에게도 권했다고 했지만 나중에 우리가 “발롯을 먹은 대단한 아이들”로 불린 것으로 보아 모두가 즐겨 먹는 음식 같지는 않았다. 참고로 발롯은 그 모양새가 너무 끔찍해 밤에만 판단다. 그 날 겪은 충격과 공포 때문에 이들이 우리를 제대로 놀렸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우리를 환영하고 좀 더 확실하게 필리핀을 소개하고 싶었던 그들 나름의 방식이었다고 생각한다. 그 이후 친구들을 만나러 필리핀에 종종 갔지만 발롯 장수만 보면 도망쳤고 나는 본의 아니게 개발 현장에서 접하는 모든 음식을 조심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이런 일을 누가 쉽게 잊을 수 있나 싶을만큼, 6년이 지난 지금도 필리핀을 떠올리면 여전히 웃음이 날 만큼, 그날의 혹독했던 신고식은 내게 좋은 추억으로 남아있다. 





기사 입력 일자 : 2015-07-29




작성: 송유림, ODA Watch 활동가 8기 / salamatpo@gmail.com





--------------------------------------

[1] 대학생 4인으로 구성된 5개 팀이 아시아 내 5개국에서 활동하는 현재의 틀과는 차이가 있음.(참조: http://www.raonatti.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