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학적 시선과 감수성으로 정의로운 개발 구상하기

<인류학의 눈으로 다시보는 국제개발협력 교육> 리뷰



드디어 그날이 왔다. 국제개발협력과 인류학이 만나는 자리. ODA Watch가 고이 마련해 준 이 자리는, 발전인류학(Social Anthropology of Development)을 공부한 인류학도이자 국제개발협력 분야에 몸 담아온 실무자로서 오랜 기간 고대해 온 순간이었다. 인류학 전공의 개발정책전문가, 아프리카 난민 전문가, 동남아시아 이주 전문가 등 다양한 인류학자로 구성된 강사진과 부드러운 듯 날카로운 저력을 발휘했던 수강생들이 함께했던 이번 <인류학의 눈으로 다시보는 국제개발협력> 교육에 나 또한 참여관찰자 로 함께했다.



하나, 인류학과 국제개발협력의 조우



다소 생경한, 하지만 알고 보면 항상 우리 곁에 있어온 ‘인류학’


대학 시절 처음 인류학을 접했던 때를 기억한다. 고대 유물이나 유적을 발굴하면서 인류의 과거를 연구하는 학문 같기도 하고, 제3세계 사회와 문화, 그리고 그 사람들을 연구하는 학문 같기도 한 아리송한 정체에 대한 호기심 하나만으로 인류학개론 강의실에 앉아있던 호기로웠던 나를 기억한다. 


처음에는 당시 공부하고 있었던 언론학, 경제학과는 전혀 다른 안경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학문에 다소 생경함을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사람에게 관심을 갖고, 그 사람과 가깝게 관계를 맺으며, 그 사람을(그리고 동시에 나를) 점차 발견해간다는 사실에 있어서는 인류학이 그리 낯선 학문이 아닌, 어찌 보면 우리가 항상 해오고 있는 인생 공부와 결코 다르지 않은 공부라는 것이 인류학에 대한 나의 첫 인상이었다.



국제개발협력을 바라보는 사람 중심의 창


그 짧은 만남 후 인류학을 기억 속에 묻어두고 있다가 다시 꺼내게 된 계기는 졸업 후 캄보디아에서 보낸 2년이라는 시간이었다. 이번 교육의 네 번째 강의에서도 직접 소개했던 장애인기술교육센터 ‘반티에이 쁘리업(Banteay Prieb)’에서 지냈던 경험이, 또 캄보디아에서 국제개발 현장을 직접 목격했던 시간들이 인류학을 더 공부해봐야겠다는 결심으로 이끄는데 큰 역할을 했다. 그 2년동안 나는 ‘개발이 과연 무엇일까’에 대해 또 ‘개발은 어떤 얼굴이어야 하는지’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했고, 그 답을 한번 찾아보기 위해 인간을 연구의 중심에 두는 인류학을 개발을 바라보는 창으로서 선택하게 된 것이다. 


이번 교육은 여전히 그 두 가지 물음의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 있는 내게 큰 힌트를 던져준 시간이었다. 뿐만 아니라 인류학을 접해보지 않았던 이들이 개발에 대해 가질 법한 근원적인 질문에도 답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을 것이다. 인류학자처럼 개발의 안과 밖을 드나들면서, 개발 분야에서 중요하게 부각되고 있는 난민과 이주 이슈를 인류학적 시선으로 살펴보고, 인류학적 감수성으로 개발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재구성하는 등 인류학의 창을 통해 국제개발협력을 들여다볼 수 있었던, 인류학과 국제개발협력이 만나는 순간들을 에스노그라피  로 기록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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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학의 눈으로 다시보는 국제개발협력> 교육 참가자 단체사진 ⓒODA Watch



둘, 인류학적 시선과 감수성으로 개발을 바라보고 성찰하고 재구성하다



인류학을 통해 보는 개발의 안과 밖: 개발과 인류학의 관계성을 살펴보다


문화인류학자이자 ODA Watch 대표인 이태주 교수님의 강의로 교육의 첫 문을 열었다. 첫 강의답게 ‘인류학을 통해 보는 개발과 안과 밖’을 주제로 개발과 인류학의 관계성에 대해 종합적으로 살펴보는 시간이 이어졌다. 발전인류학과 개발인류학의 차이부터 시작하여, 인류학이 개발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개발을 어떻게 성찰하는지, 문화와 개발협력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등 다양한 이슈들에 대한 빈틈없는 설명을 통해 머릿속에 인류학과 개발협력의 연결고리를 그려 볼 수 있었다. 특히 정치학이나 경제학처럼 전형적인 외부인으로서 개발을 바라보는 관점이 아닌, 내부자의 시선으로 개발을 바라본다는 점에서 인류학의 중요성을 깨달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아프리카 빈곤과 이주의 인류학: 아프리카의 발명과 이주의 편견을 깨다


나이지리아 현지조사 이야기와 다양한 연구경험을 바탕으로 한 강원대학교 문화인류학과 한건수 교수님의 ‘아프리카 빈곤과 이주의 인류학’ 강의가 그 뒤를 이었다. 아프리카 연구와 함께 시작된 인류학의 역사와 같은 간단한 인류학사부터, 현지조사와 참여관찰 등 인류학적 방법론까지 인류학의 기초 지식을 습득할 수 있었던 강의였다. 아프리카의 역사 및 배경에 대한 개괄적 설명과 함께, 핵심 주제인 이주에 관한 본격적인 소개가 이어졌다. 오래 전 노예무역으로 시작한 디아스포라부터 Mobile trader와 이주노동자, 그리고 난민 등 현대판 디아스포라까지 아프리카의 이동성 및 이동 문화를 상세히 들여다보았다. 마지막으로 한국의 개발협력을 연예산업에 비유하면서 최근 불고 있는 개발협력 열풍을 성찰하고, 과연 이것이 개발협력인지 타자화인지에 대한 통찰력 있는 질문을 던지는 것으로 강의는 마무리되었다.  



개발과 난민의 인류학: 우리 머릿속의 난민이 과연 진짜 난민의 모습일까


문화인류학자로서 동남아시아 지역을 전문적으로 연구해오신 연세대학교 문화인류학과 이상국 교수님의 수업은 태국-미얀마 국경에서 직접 진행한 현지조사 내용을 바탕으로, 난민과 난민촌에 대해 재성찰하는 시간으로 꾸려졌다. 특히 국경에 대한 우리의 관념과 만들어진 난민의 이미지 등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왔던 여러 통념들을 되짚어보고 진실을 마주하는 시간을 통해, 난민 이슈에 왜 인류학이 개입해야 하는지를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다.



국제개발에서의 인류학적 기여: 국제개발 현장을 뛰는 인류학자들


네 번째 시간에는 글로벌발전연구원 ReDI 홍문숙 실장님과 함께 국제개발협력에서 인류학이 어떤 역할을 해왔는지 살펴보았다. 인간을 연구의 중심에 두는 인류학이 국제개발협력 내 다양한 층위에서 어떻게 참여하고 기여할 수 있는지를 비롯하여 개발협력 현장에서 인류학 연구자들의 독특한 포지셔닝에 대해서도 소개되었다. 또한 개발인류학의 다양한 개발의 화두를 짚어보고, 그 중에서도 핵심 주제인 ‘참여’를 중심으로 개발인류학에서 어떤 논의가 있어왔는지 살펴보았다. 


이러한 화두와 주제를 잘 적용한 사업기획과 평가 사례 소개도 이어졌다. 나는 지역적 맥락, 주인의식, 참여, 역량강화 등 네 가지 핵심주제로 2년간 몸담았던 반티에이 쁘리업의 ‘권리와 자립에 기반한 지체장애인 자력화(Empowerment) 프로그램’을 재구성하여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다. 지난 세 번의 강의들이 이론이나 개념에 집중하였다면, 이번 강의에서는 개발과 인류학에 대해 한층 더 손에 만져지는 이야기들을 나눠볼 수 있었다. 



<조별활동> 사업기획 실습 및 발표 : 인류학적 시선과 감수성으로 정의로운 개발 구상하기


이번 교육의 마지막 시간이자 하이라이트, 그동안 배운 인류학적 시선과 방법론으로 직접 국제 개발 사업을 기획해보는 조별 워크숍 시간을 가졌다. 네 팀으로 나뉜 수강생들은 아래 지역 및 주제별로 인류학적 감수성이 많이 묻어나는 프로젝트를 기획해보았다. 


■ DR콩고 키상기니 지역 소년병

■ 세네갈 생루이 지역의 기후변화에 영향 받는 어부 가족

■ 캄보디아 프놈펜 외곽 지역에 거주하는 여성 이주 노동자

■ 미얀마 귀국 이주노동자


수강생들은 놀이를 통해 콩고 소년병들의 자존감 향상을 목표로 삼기도 했고, 생루이 지역의 어부 가족들의 삶을 다큐멘터리로 촬영하여 환경문제에 대한 모두의 책무성을 일깨우자는 제안도 있었다. 또, 캄보디아 여성 노동자들의 인권 보호 위한 애드보커시 활동의 일환으로 SNS 교육 계획을 짜기도 하였으며, 타국에서 이주노동자로 일하고 미얀마로 돌아온 여성들을 공동체를 회복하기 위한 주체로서 바라보는 시선을 제시하기도 했다. 


수치로 나타나는 목표가 아닌, 가시적인 성과를 위함이 아닌, 성장 중심이 아닌, 타자화를 하는 시선이 아닌,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개발이 아닌, 권력 구도를 견고하게 하는 부정의한 개발이 아닌,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을 중심으로 하여, 인간의 얼굴을 한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개발 프로젝트들을 보면서 국제개발협력 분야에 몸담고 있는 인류학도로서 가장 뿌듯한 시간이 아닐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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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별로 인류학적 관점을 적용하여 사업을 기획해보는 참가자들 ⓒODA Watch



셋, 근본으로 돌아가라:

‘사람’이 곧 개발의 정의(Definition)이자 개발 정의(Justice)



개발이 과연 무엇일까, 또 개발은 어떤 얼굴이어야 할까


소소하지만 큰 기쁨인 시간들이었다. 이렇게 국제개발협력과 인류학의 조우를 마주할 수 있는 자리가 얼마나 될까. 인류학적 감수성이 풍부한 사람들과 옹기종기 모여앉아 인간 중심의 개발을 이야기하고 꿈꿀 수 있는 자리가 얼마나 될까. 


특히 이번 교육을 통해 ‘개발이 과연 무엇일까’에 대한 또 ‘개발은 어떤 얼굴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오랜 고민을 풀 수 있는 실마리라는 큰 수확을 얻었다. 인류학이 주는 메시지인 공동체 의식, 권리 중심, 역량 강화, 주인의식, 자존감 향상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반대로 정의롭지 못한 불평등한 개발의 얼굴들을 동시에 발견해나가며 다양한 개발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개발의 정의(Definition)에서 시작하는 개발 정의(Justice)


그렇다면 개발은 대체 무엇일까. 어떤 이에게는 경제 발전이고, 어떤 이에게는 사회 체제일 수 있으며, 또 어떤 이에게는 국제 정치로 이해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다양한 접근들에 기인한 복잡성에도 불구하고, 이 모두를 관통하는 것이 있다. 바로 ‘사람’. 경제 발전도, 사회 체제도, 국제 정치도 결국에는 모두 사람들의 삶과 연결되어 있고 또 사람으로부터 시작하기 때문이다. 그 어떤 이념적 논쟁도 결국 근본으로 돌아간다면 사람을 중심으로 접근할 수밖에 없을 것이기에, 나는 개발을 ‘사람’이라 정의하고자 한다. 또 이러한 정의(Definition)에서 개발 정의(Justice)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의 얼굴을 한 개발이 바로 개발정의의 핵심일 것이다.


MDG의 끝과 SDG 시작의 경계에 서있는 중요한 이 시점에, 인류학적 시선과 감수성이 국제개발협력을 성찰하는 데에 지대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이런 연유에서 인간에 대해 연구하는 인류학이, 사람으로 시작해 사람으로 귀결되는 국제개발에서 그 중요성과 정당성을 가진다고 생각한다. 마지막 강의에서 모든 수강생들이 인류학자로서 개발 프로젝트 기획에 참여한 것처럼 모든 이들이 인류학자가 될 수 있다. 모든 이들이 개발 프로젝트와 정책에 사람 중심의 인류학적 감수성과 시선을 투영시키면서 정의로운 개발을 구상하고, 결국 견고해 보이는 부정의하고 불평등한 개발을 넘어 개발정의를 이룰 수 있음을 믿는다.



다시 하나, [인류]학과 국제[개발]협력의 조우


인류학도답게 참여관찰자로 함께했던 다섯 번의 강의들은 인류학과 국제개발협력의 만남을 넘어, ‘인류’와 ‘개발’이 만나는 순간들을 마주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이를 기록한 나의 에스노그라피는 마치 ODA Watch가 인권, 평등, 연대를 통해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끊임없이 발전 대안을 찾아가는 모습처럼, 인류의 더 나은 삶을 위해 더 정의로운 개발로 나아가려는 수많은 시도들로 가득 찼다. 앞으로도 부정의한 개발에 짱돌을 던지고 정의로운 개발을 구상하는 그 수많은 시도들과 ODA Watch와의 또 다른 조우가 있기를 간절히 기대한다. 





기사 입력 일자 : 2015-07-29




작성: 정연주, 글로벌발전연구원 ReDI 지속발전연구팀 연구원 / yeonju.silvia@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