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뭘 개발하자는 건데?

세계식량계획 라오스 지부_김현정



이번 호 OWL 해외현장의 목소리에서는 세계식량기구(World Food Programme: WFP) 라오스 지부에서 활동하고 있는 김현정 씨의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라오스 국제개발협력 현장의 한복판에서 개발의 의미를 다시 찾아가고 있는 그녀의 삶과 고민의 흔적들을 통해, ‘지속가능한 개발을 위해 쉼 없이 달리고 있는 여러분들의 발걸음을 잠시 멈춰 세우고자 합니다.



몇 년 전쯤인가 개발학 공부를 막 시작했을 즈음이다. 술자리에서 어느 선배가 내게 비꼬듯이 질문 한 적이 있다. “대체 뭘 개발하겠다는 건데?” 당시 개발학이라는 학문의 인지도가 높지 않긴 했지만, 선배의 질문이 단순히 궁금함을 해소하려는 목적에서 던져진 게 아니라는 것쯤은 눈치챌 수 있었다. “대체 뭘 개발하겠다는 건데?” 그 선배의 냉기 어린 이 질문은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지금까지도 나를 괴롭히는 골칫거리다.

 

WFP(세계식량계획, World Food Programme) 라오스 지부에서 활동하며 각종 회의 자리와 현장활동가들 모임을 통해 들은 얘기 하나를 전할까 한다. 요약하면 이런 내용이다. 유럽 어느 나라에서 최첨단 의료기기 여러 대를 모 병원에 지원했다. 대대적인 홍보가 뒤따른 것은 당연지사. 그리고 철수. 그런데 의료기기를 다룰 수 있는 라오스 의료진이 없다는 현실. 뒤늦게 사태를 파악한 그 유럽 어느 나라에서 다시 대대적인 역량 강화 프로그램을 도입해 라오스 의료진에게 의료기기 사용법을 가르쳤다. 그리고 또 철수.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의료기기는 사용되지 못했다고 한다. 의료기기가 뽑아낸 결과를 판독할 수 있는 의사가 없어서라는 슬픈 결말이다.

 

이야기 하나 더. 이것은 내가 직접 겪은 일이다. 이탈리아 정부가 자금을 지원하고 모 NGO에서 진행한 모자(母子)쉼터(Maternity Waiting Home) 사업에 WFP가 쌀을 지원한 적이 있다. ‘모자쉼터MDGs(새천년개발목표, Millennium Development Goals) 중 하나인 모자 영아 사망률 감소를 위해 라오스 오지 8개 지역에 세워진 임산부들의 쉼터 겸 교육장이다. 그렇게 쌀을 지원한 지 6개월쯤 지난 어느 날, 갑작스런 통보가 날아 들었다. 쉼터를 운영하던 NGO단체가 자금조달 문제로 곧 철수 한다는 내용이었다. 모자쉼터 사업의 프로젝트 기간은 총 2년이었으나, 그 중 1 6개월이 시설공사에 소요된 점을 감안하면 문을 연지 겨우 6개월 만에 벌어진 일이다. 해당 NGO 단체는 긴급 회의를 열어, 단 며칠 만에 라오스 각 주정부 보건국에 쉼터 운영권한을 이양해버렸다. 그 후 3개월 지나 다시 8개 시설을 방문했으나, 모두 문을 닫은 상태였다. 이유는 주정부의 예산과 인력이 부족해서였다. 또 하나의 슬픈 결말이다.

 

개발사업을 진행하는 단체들은 정부간 기구(IGO)건 비정부간 기구(INGO)건 간에 자금조달 문제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개발사업 기간은 대개 짧게는 2, 길게는 5년인데, 전 기간에 걸쳐 필요한 자금 전부를 보장 받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 짧은 자금 지원기간과 부족한 재원은 특히 소프트웨어 성격의 사업을 수행할 때 더 큰 문제가 된다. 예를 들면, 현지 인력의 역량강화(capacity development)’에 중점을 둔 개발사업은 사업의 효과가 충분한 시간이 흐른 뒤에야 발현되므로 프로젝트를 장기로 운영할 수밖에 없다. , 자금이 장기간 지속적으로 뒷받침되지 않으면 이러한 성격의 프로젝트는 소기의 성과를 얻기 힘들다. 하지만 경쟁적인 개발사업 현장에서 장기 지원을 기대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현실적으로 대부분의 개발사업은 아무리 길게 가도 10년 내에 철수하게 된다.       

 

그렇다면 과연 지속가능한 개발(sustainable development)’은 가능한 것인가? ‘지속가능한 개발은 참 예쁜 말이다. 동시에 개발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에게는 무서운 말이기도 하다. 지속적인 자금조달은 장담할 수 없는데 사업은 지속해야 하니 말이다. 지속가능한 개발하기 힘들다.

 

앞서 언급한 두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첫째, 라오스 의료기기 이야기의 경우 지속가능한 개발을 위해서는 라오스 의료진을 위한 전반적인 역량강화 프로그램이 필수적으로 도입되어야 한다. 이는 단지 의료기기를 다룰 수 있게 하는 기술적 차원을 넘어, 라오스 의료인력 양성이라는 교육적 차원까지도 고려해야 함을 의미한다. 둘째, 모자쉼터 사업의 경우는 사업기획 단계부터 주정부 보건국을 대상으로 한 경영교육과 주정부와의 비용분담(cost sharing) 계획에 대한 협의 등이 수반되어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위에서 보듯이 해당 사업은 하나마나 한 일이 되어버린다. 더 냉소적으로 얘기하면, 자원의 낭비만 초래할 뿐이다.

 

지속성(sustainability)을 어떤 방식으로 확보하느냐는 개발 사업을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답변이 달라질 것이다. 이는 매우 철학적인 문제로, 넓게는 대체 뭘 개발할건데?” 라는 나의 실존적인 골칫거리와도 맞닿아있다. 허나, 이런 형이상학적인 고민은 잠시 아래로 내려놓고자 한다. 지금은 명멸하는 여러 프로젝트 사이에서 수혜자들에게 가는 혜택만이라도-혜택이 있다면- 지속적으로 유지시킬 수 있는 현실적인 방법에 대해 집중해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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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을 자원활동가와 함께 간식을 준비하는 모습. 주(州)정부 교육부 공무원(남자)은 음식준비를 거들며 과정을 모니터링하고 있다. 라오스는 국민의 미량영양소 결핍 비율이 높은 국가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WFP는 옥수수와 콩을 혼합한 음식에 비타민과 미네랄을 첨가해 초등학생과 유치원생에게 제공한다.



라오스 정부는 2011년도 예산 중 교육개발 분야에만 7700만 달러 정도를 필요로 할 것으로 예상한다(비공식 데이터). 그 중 라오스 정부에서 자체적으로 충당할 수 있는 예산은 8%에 지나지 않는다. 92%는 해외차관(foreign investment)에 의존할 예정이다. 어림잡아 40-50개 정도의 개발원조 단체가 참여할 것으로 추정되며, 초등학생 취학률을 높이기 위해 1500여 개 초등학교에서 학교급식 프로그램(school feeding programme)을 진행하고 있는 WFP도 그들 중 하나이다. WFP의 경우 학교급식 프로그램에 연간 620만 달러의 예산을 책정하고 있으나 이 프로그램은 2011년에 만료될 예정이다. 그렇다면 2012년에는?

 

다행히 라오스 교육부는 지난 몇 년간 학교급식 프로그램이 초등학생 취학률을 높이는데 상당한 기여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또한 학교급식 프로그램은 정부의 교육분야 개발정책(Education Sector Development Framework)’에 포함되어 있기도 하다. 이는 앞으로 라오스 정부 차원에서 급식 프로그램을 진행해 나가겠다는 정치적 의지의 천명인 셈이다. 실제로, 예전에는 학교급식 프로그램은 WFP 영역이라고 인식되어왔으나 이것이 정부 정책에 포함된 이후로는 정부 자체 예산 및 인력의 유입이 급격히 늘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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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양간식을 제공받은 아이들의 모습. 간식은 아침과 점심식사 사이에 제공된다.



라오스 정부의 행보가 이렇듯 급물살을 타게 된 것은 라오스가 2010년 세계은행에서 지원하는 Education For All-Fast Track Initiative(모두를 위한 교육-속성) 프로그램의 수혜국으로 선정되면서부터이다. 세계은행이 풀어낼 돈 꾸러미를 두고, 교육개발 프로그램을 실행하고 있던 UNICEF, WFP, UNESCO 등의 단체들은 2009년 치열한 자금확보 전쟁을 벌였다. 각 단체들은 라오스 정부의 역량이 아직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세계은행의 자원이 자신들의 프로그램에 지원되어야 한다고 애타게 외쳤으나, 세계은행은 사업의 지속성을 고려해 과감하게 라오스 교육부를 프로그램의 수혜자로 선정했다.

 

라오스 정부의 정치적 신념(commitment)이 있더라도 연간 620만 불이라는 자금을 동원할 수 없다면 라오스의 학교급식 프로그램은 안녕을 고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세계은행의 지원으로 라오스 정부는 WFP의 학교급식 프로그램 뿐 아니라 UNICEF양질의 학교 프로그램(school of quality programme)’, UNESCO비정규교육 프로그램(informal education programme)’ 등을 운영할 만한 예산을 갖게 됐다. 이제는 입장이 바뀐 셈이다. WFP, UNICEF, UNESCO 등은 이제 라오스 교육부를 대상으로 각각의 프로그램에 더 많은 자원을 분배하도록 로비를 해야 할 판이다. 물론 정부가 그 프로그램들을 잘 운영할 수 있도록 기술자문(technical advisor)으로써의 역할도 충실히 해야 한다. 정부의 실패는 곧 이 국제기관들의 프로젝트 실패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지속성(sustainability)을 향상시킬 수 있는 공여자, 수혜국 정부, 그리고 개발단체의 삼각관계와 각각의 역할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한다. 자원의 흐름이 공여자->개발단체->수혜국 정부가 아닌 공여자->수혜국이자 자원 집행자로서의 정부->개발프로그램+전문기관의 기술지원으로 이어지는 이 그림은 특히 ODA 공여국으로 이제 걸음마를 시작하는 한국이 사업의 지속가능성을 어떻게 평가하고 구현해야 하는지에 대해 참고 할 만한 사항이다. 또한, 단지 물질적인 지원에 그치지 말고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수혜국 정책에 대한 분석과 지원 또한 고려해야 할 지점이다.

 

라오스의 참신한 행보는 이제 막 시작됐다. 갈 길은 아직 멀다. 눈 앞에는 끝없이 많은 장애물들이 놓여있다. 라오스 정부의 역량문제부터 분야별 조율, 개발 파트너들 사이의 보이지 않는 신경전, 세계은행에서 제공되는 자금 외의 예산 확보 가능성 등... 100%의 성공을 장담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 덕분에 곧 닥칠 학교급식의 정부 프로그램으로의 전환을 준비해야 하는 나로써는 더더욱 골치가 아프다. 하지만 지속가능한 교육개발을 이끌어 나가는 리더로서, 그리고 라오스 정부와 이를 지원하는 단체 및 공여자들의 행보에 동참하는 일원으로서, 내 오랜 고민인 뭘 개발하겠다는 건데?”에 대한 해답의 작은 퍼즐 한 조각쯤은 맞출 수 있길 기대해본다.

 

기사 입력 일자: 2010-09-01



김현정, broken47@hotmail.com / School Feeding Programme Officer of WFP Lao PDR